나이 들어야 알게 되는 것.
이것이 인생이구나
어떤 면에서 인생은 등산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산 아래에선 주변밖에 볼 수 없지만
높이가 달라질 때마다 시야는 넓어지고 그만큼
전에는 보지 못했던 먼 곳까지 볼 수 있다.
인생이 70을 넘으면 산의 7부 능선에 서는 것과 같고,
이어 8부 능선을 넘어 정상이 가까워지면 시야는 더 넓어진다.
나이든 사람들의 체험적인 지혜는 그래서 놀랍고 소중하다.
산 아래에 있을 때는 알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에 대해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들면 생각을 바꾸게 되는 게 많다.
아집과 고집을 버리게 되고
세상 이치에 순응하는 진지한 자세가 되는 게 그 때문이다.
20, 30대는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자기 기준대로
세상을 재단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게 크게 경솔 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나이가 들어야 비로서
알아지는 일들이 아주 많다.
마음을 비우고 자세를 낮추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깨닫게 된다.
나이 들어 가장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일중의 하나가
값과 가치를 나누어 볼 줄 알게 되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값-돈을 위해 써오고 있다.
사실 현실적인 일상을 살려면 돈-경제력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나이 들어 문득 생각해 보면
인생을 결코 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값은 물건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이다.
값이나 가치(價値)는 사물과 일의 중요성이며 그 깊은 의미다.
값은 육신의 일상이지만
가치는 내 인생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나이 들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고
남은여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값만을 위한 인생과 가치만을 위한 인생은 없다.
두 가지는 늘 같이 있는것 이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결판은
가치에 있는 게 사실이다.
값에 탐닉할수록 가치는 엷어진다.
그리고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인생은
허망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
아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끝까지 평행선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후천적 환경요인에 의해
인격’이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데 있어 교육은 절대적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태생적 본능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그 능력은 교육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기도 하다.
도덕, 윤리가 그런 덕목들이다.
언제나 인성교육이 강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 알아지는 것은,
인간은 그 성정(性情-성질과 심성, 타고나는 본성) 이
선한 사람과 악한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론적이기 보다는 체험적인 얘기다.
분명 우리주변에는 더 선한 사람도 있고 더 악한 사람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사람이 더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희망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정말 자유로워진다.
이때의 자유는, 남과 나를 비교하는 일 에서의 자유다.
어릴 때나 젊었을 때는 늘 남과 나를 비교하고
시샘하고 질투 하게 된다.
사실 그런 심리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자기발전을 위해 분발하고 더 노력하는
순기능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는 스트레스이고 무거운 짐이다.
나이 들면 그 비교가 사라진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속에 ‘내 것’ 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생관이라 해도 좋고, 자기철학이라고 해도 좋다.
남과의 비교에서 해방되면 비로 서 자기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물질적인 것들의
비교에서 더 그렇다.
더 가졌다는 것은 ‘편리함’ 이지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주관적 느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진정한 행복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재산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알고 나면 더 자유스럽다.
나이 들어 좋은 점 중 이만한 것도 많지 않다.
노년에 받는 큰 선물이기도 하다.
노년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노년을 살아보면 이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그건 정말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해도 건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특히 나이 들어 병이 깊어지면 가족에게도 큰 짐이 된다.
본인의 괴로움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사람들은 건강관리와 병 치료를 혼동하고 있다.
병 치료는 글자그대로 치료다.
그러나 건강관리는 ‘건강한 상태’ 를 유지, 관리하는 것이다.
노년의 건강은 젊어서 부터의 연장이다.
따라서 건강관리는 젊었을 때, 건강할 때부터
시작 하는 게 옳다.
노인들의 70%이상이 한 가지 이상의 지병이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몸은 비록 늙어 노쇠해진다 해도 그 기본에서 건강하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노년건강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다.
주변을 살펴보면 뜻밖에 어리석은 노인들이 많다.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에 그 노년이 비참해진 경우가 그렇다.
나이 들어 돈 없으면 죽은 목숨이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경험자들이 쏟아낸 아픈 절규이기도 하다.
현역이었을 때의 재산을 기준 한다면
그 노년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이 늙은이들이 자식 뒷바라지 한다고
학비대주고, 용돈주고, 결혼비용까지 대 주다보니
정작 자기들은 알거지가 된 것이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은 한 결 같이
그 부모에 대해서는 나 몰 라라다.
잘해준 자식일수록 전화도 안한다.
그게 지금의 험악하고 사악한 세상이다.
이게 모두 남의 얘기일까,
어느 날 알거지가 된 자기를 발견하는 건
이제 아주 흔한 일임을 명심해야 된다.
늙어 빈손이 되면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다 쪽방에 누워있는
하나의 구(具)가 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니 이상하게도 주변에서 그런 어리석고
불쌍한 늙은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년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물리적으로는 ‘돈 없음’ 이지만,
내용적으로 가장 큰 적은 무료(無聊)다.
무료는 재미있는 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한 것이다.
무료는 노인들을 더 빨리 늙게 하고 지치게 한다.
노인정에 나가고,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전철을 타고 돌아다녀도 없어지지 않는게 바로 이 무료다.
그런 방법으로는 무료를 극복할 수 없다.
어느 날 저녁시간,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어디에선가 팬파이프의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 보니 노인한분이 가로등이 비치는 나뭇가지에
악보를 걸어놓고 연습하고 있었다. 얼마나 연습에 몰두했는지
사람이 가까이 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무료를 스스로 극복하는 케이스의 하나일 것이다.
사실, 나이 들어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뭔가를 시작, 대비해야 된다.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곡을 악기로 연주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돈으로는 절대 살수 없는 것이다.
노년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비로서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렇지 못한 노년도 많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표상이다.
젊었을 땐 그걸 알아보는 눈이 없다.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건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내용’ 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들은 닳아서 없어지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그래서 영원하다.
사색, 이념, 자기철학, 이데올로기,
종교가 모두 보이지 않는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