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캐나다 마니토바 주의 레드 리버 계곡에서 처음 유행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에 알려진 것은 1880년경이다.
이 노래는 1896년 뉴욕에서 "In the Bright Mohawk Valley"
(작가 James Kerrigan)란 명칭으로 인쇄되어 나왔다.
1925년에는 텍사스 카우보이 가수 Carl Sprague가
"카우보이 러브 송"이란 이름으로 레코드 취입을 하여 대유행.
이렇게 제목이 바뀌면서 가사까지 달라졌다.
아무래도 이 노래는 원작자가 분명치 않으므로
일단 캐나다 민요곡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계곡(valley)"은 우리 한국인의 정서로 보면 거의
"고향"과 같은 의미를 갖는, 정겨운 단어이다.
그래서 노래 제목도 "Bright Sherman Valley",
"Bright Laurel Valley", "In the Bright Mohawk Valley",
"Bright Little Valley"
등, 자기 고향에 맞게 멋대로 바꾸는 것이었다.
1965년 코니 프란시스의 애타는 보이스로 히트했으며
당시 국내 팬들의 마음을 흠씬 사로잡았다.
|
홍하의 골짜기에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루크라는 정의로운 카우보이가 있었답니다.
루크에겐 정말 미치도록 사랑한 여자가 있었고.
그러나 그 여자는 서부 생활을 너무 힘들어해서 다시
루크를 남겨두고 동부로 가 버렸습니다.
루크는 점점 이상해지다 마침내 미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외로운 루크로 불렸습니다.
어느 날, 외로운 루크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가 사흘 뒤
사막에서 동료 카우보이들이 찾아냈을 때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며칠 뒤, 방울뱀 마을에 다 쓰러저가는 호텔 피아노가
'홍하의 골짜기' 를 혼자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주변에 봉사를 많이 했던 외로운 루크의 유령이
밤마다 홍하의 골짜기를 연주하기 위해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잠이 안오는 날 밤이면 홍하의 골짜기를
하모니카로 부르며 외로운 루크의 유령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
|
|
|
1958년에 5곡을 히트시킨 [Connie Francis]는 1959년에도
7곡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 중 [Lipstick on Your Collar]
가 5위에
[Among My Souvenirs]가 7위에
[Trankie]가 차트 9위 히트를 기록했다.
[Connie Francis]는 1960년에 무려 9곡의 차트 히트곡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
[Everybody's Somebody's Fool]과
[My Heart Has A Mind Of It's Own] 두곡이
넘버원 히트를 기록하였고 [Mama]는 8위 히트를 기록했다.
1961년에도 그녀는 9곡의
차트 히트곡을 발표했는데 그 중 [Where The Boys Are]가 4위에
[Together]가 6위에
[When The Boy In Your Arms(Is The Boy In Your Heart)]가
10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Connie Francis]는 1962년에는 6곡의 차트 히트곡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
[Don't Break The Heart That Loves You]가
넘버원 히트를 기록했고 그 뒤를
이어서 [Second Hand Love] 7위, [Vacation]이
9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그녀는 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 탑 텐 히트곡만 알아보아도 지면이
다 차버릴 정도로 팬들의 사랑속에 푹 파묻혀 인기를 누린 가수였다.
|
보통사람 같으면 견딜 수 없었던 고통을 그녀는 이겨냈다.
아마 불행과 싸워이길 수 있었던 것은 60년대의 영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70년대말 [Connie Francis]는 지난날 화려했던
시절을 발판삼아 새로운 앨범과 함께 재기하였다.
그리고 80년대초에 발표했던 앨범인
[There's Still A Few Good Love Songs Left In Me]에
이르기까지 히트 차트에 오르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한번 떠난 스타덤은 좀처럼 그녀의 곁으로 돌아올줄 몰랐다.
60년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10년 가까운 허무한 공백의 세월을 보낸뒤에
재기한 [Connie Francis]에게 변화무쌍한 팝 음악계는
스타덤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결국 1970년 이후 [Connie Francis]의 노래는
차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제 [Connie Francis]는 60년대 팝 음악계의 전설로서
어제의 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의 노래는
오늘도, 앞으로도 우리의 애청곡으로 들려지고 불려질 것이다
|